IMF 외환위기 속에서도 빛나던 1998년.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98년생들의 추억부터 당시 청춘을 보낸 세대의 이야기까지, 빛바랜 사진첩을 꺼내보듯 그 시절을 함께 추억해 봐요.
응답하라 1998, 그 시절 문화

1998년, 세기말의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던 바로 그 해. IMF 외환위기라는 거센 한파가 사회 전체를 얼어붙게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문화계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용광로처럼 들끓었습니다. 온 국민이 함께 웃고 울며 서로를 위로했던 그 시절, 우리는 어떤 노래를 들으며 어깨를 들썩이고, 어떤 영화에 푹 빠져들었으며, 또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안부를 물었을까요?
지금의 98년생들이 세상의 빛을 보던 그 시간, 20세기의 끝자락에서 펼쳐졌던 다채로운 문화의 향연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1998년은 IMF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시련 속에서도, 문화의 힘으로 서로를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던 역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가요계: 1세대 아이돌의 황금기
1998년의 대중음악계를 논할 때 ‘1세대 아이돌’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넘어, 청소년들의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아이콘이었습니다. H.O.T.와 젝스키스, S.E.S.와 핑클이라는 전설적인 라이벌 구도는 가요계를 더욱 뜨겁게 달궜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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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와 젝스키스, 소년들의 우상
H.O.T.의 ‘빛(Hope)’과 젝스키스의 ‘커플(Couple)’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선사했습니다. 이들의 등장은 대한민국 팬덤 문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습니다. 공식 색깔인 흰색과 노란색 풍선을 흔들며 목이 터져라 응원 구호를 외치던 소녀 팬들의 모습은 당시의 상징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앨범이 발매되는 날이면 레코드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죠. -
S.E.S.와 핑클, 가요계의 요정들
‘요정’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던 두 걸그룹, S.E.S.와 핑클의 등장은 가요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매력의 S.E.S.가 ‘Dreams Come True’로 사랑받았다면, 핑클은 ‘내 남자 친구에게’를 통해 상큼하고 발랄한 매력을 뽐내며 남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들의 패션과 헤어스타일은 곧바로 10대 소녀들의 유행이 되었습니다. -
밀리언셀러의 시대
지금처럼 스트리밍 서비스가 없던 시절,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곧 앨범을 ‘소유’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CD 케이스 속 가사집을 보물처럼 아꼈죠. 김건모, 조성모 등 솔로 가수들의 활약과 함께 아이돌 그룹들의 앨범이 연이어 100만 장 이상 팔려나가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대한민국 음반 시장은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기를 누렸습니다.
스크린 속 이야기: 낭만과 감동
1998년 극장가는 훗날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 명작들과 전 세계를 휩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공존하며 관객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스크린 속 이야기에 함께 울고 웃으며, 잠시나마 현실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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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한국 멜로의 정수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 주연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1998년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진사 ‘정원’과 주차 단속원 ‘다림’의 풋풋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수많은 관객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자극적인 설정 없이 담담하게 그려낸 사랑과 이별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최고의 멜로 영화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
여고괴담, 공포 영화의 새로운 지평
‘학교’라는 가장 일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한 공포 영화 ‘여고괴담’의 등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억압적인 교육 현실과 입시 경쟁의 스트레스를 공포 장르와 절묘하게 결합하여 10대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얻어냈고, 이후 시리즈를 이어가며 한국 공포 영화의 대표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
‘타이타닉’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위력
1997년 말에 개봉한 ‘타이타닉’의 열풍은 1998년 내내 대한민국을 휩쓸었습니다. ‘잭’과 ‘로즈’의 비극적인 사랑에 전 국민이 눈물 흘렸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외에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 ‘아마겟돈’ 등 압도적인 스케일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극장가를 점령하며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했습니다.
세상이 바뀌던 순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공존
1998년은 아날로그 시대의 끝자락에서 디지털 시대의 서막을 여는 기술적 과도기였습니다. 주머니 속 ‘삐삐’가 울리면 공중전화로 달려가야 했던 낭만과, PC 모뎀의 요란한 접속음과 함께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설렘이 공존하던 특별한 시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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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와 PCS, 통신 수단의 변혁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삐삐(무선호출기)’는 1998년에도 여전히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습니다. ‘486(사랑해)’, ‘1004(천사)’처럼 숫자로 마음을 전하는 ‘삐삐 암호’는 그 시절만의 아날로그 감성이었죠. 동시에 ‘016, 018, 019’ 번호로 대표되는 PCS(개인휴대통신)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휴대폰의 대중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비싼 요금과 짧은 배터리 시간이 단점이었지만, 언제 어디서든 통화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혁신적인 변화였습니다. -
PC통신, 새로운 커뮤니티의 탄생
“뚜- 뚜- 삐이이익-” 하는 소음과 함께 접속하던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는 세상을 연결하는 새로운 창이었습니다. 파란 화면 위에서 펼쳐지는 채팅과 동호회 활동을 통해 사람들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새로운 인연을 맺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던 경험은 지금의 SNS와는 또 다른 깊은 유대감을 형성해주었습니다. -
스타크래프트, PC방 문화의 기폭제
1998년 3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출시한 ‘스타크래프트’는 대한민국의 여가 문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략적인 게임 방식과 뛰어난 밸런스는 수많은 사람을 PC 앞으로 끌어모았고, 전국적으로 PC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게임의 인기를 넘어, ‘프로게이머’라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키고 e스포츠 산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아날로그 감성의 삐삐와 PC통신,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서막을 연 PCS와 스타크래프트의 공존은 98년이 얼마나 특별한 시대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습니다.
IMF 시대, 우리의 꿈과 현실

1998년, 우리가 세상에 첫 숨을 내쉬던 그 해,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최대의 경제 위기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IMF 외환위기’입니다. 갓 태어난 우리에게는 기억조차 없는 사건이지만, 이 시대의 공기는 우리가 성장하는 내내 보이지 않는 유산처럼 삶 곳곳에 스며들었습니다. 부모님의 한숨과 걱정, TV 뉴스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던 ‘구조조정’, ‘부도’, ‘실업’이라는 단어들은 우리가 마주할 세상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죠.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고도성장의 열기로 가득 찼던 사회는 하루아침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빙하기로 변했습니다. 어제의 대기업 부장이 오늘의 실직자가 되고,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은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은 당시 청년들과 우리 부모님 세대의 꿈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IMF 외환위기는 ‘성장’과 ‘도전’이라는 키워드를 ‘생존’과 ‘안정’으로 바꾸어 놓은 우리 사회의 거대한 변곡점이었습니다.
불안이 심어준 ‘안정’이라는 꿈
IMF 시대의 가장 큰 상흔은 바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였습니다. 언제든 내 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사회 전체를 잠식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도전’이나 ‘성취’보다 ‘안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가치관의 변화는 고스란히 자녀 세대인 우리에게 이어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절대 망하지 않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 시절,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제시했던 가장 이상적인 꿈의 형태는 아래와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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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과 ‘공기업’이라는 안정 지향적 꿈의 고착화
국가로부터 고용을 보장받는 직업은 최고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공무원 시험’ 열풍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개인의 적성이나 흥미보다는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이 성공의 척도처럼 여겨졌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선호 현상의 심화
기업의 흥망성쇠와 관계없이 독립적인 생존이 가능한 전문직에 대한 선호도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은 IMF 시대가 만들어낸 ‘꿈의 직업’ 목록 최상단을 차지했습니다. 이는 극심한 경쟁을 당연시하는 입시 문화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대기업 입사를 향한 치열한 경쟁 구도 형성
수많은 기업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살아남은 대기업, 특히 재벌 그룹은 ‘그나마 가장 안정적인 사기업’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좁아진 취업문을 뚫기 위한 스펙 경쟁은 이때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더 좋은 학벌, 더 높은 어학 점수, 더 많은 자격증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일종의 ‘보험’처럼 여겨졌고, 청년들은 무한 경쟁의 트랙 위로 내몰렸습니다.
절망 속에서 싹튼 새로운 기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폐허 속에서 새로운 기회의 씨앗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IMF의 요구로 진행된 강력한 경제 구조조정은 기존의 낡은 시스템을 해체하고 새로운 산업이 들어설 공간을 만들어주었습니다. 특히 IT 산업의 등장은 암울했던 시대의 한 줄기 빛과도 같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닷컴 버블’은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기존의 대기업 중심,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만으로 성공 신화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죠. 네이버, 다음(현 카카오), 엔씨소프트와 같은 오늘날의 거대 IT 기업들이 바로 이 시기에 싹을 틔웠습니다.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한국 사회는 IT 강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하며 새로운 기회의 씨앗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안정’만을 추구하던 시대적 흐름 속에서도, 누군가는 새로운 기술의 미래에 과감히 자신의 꿈을 걸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1998년은 우리에게 ‘안정’이라는 숙제와 ‘혁신’이라는 가능성을 동시에 물려준 해였습니다. 우리는 부모님 세대가 겪었던 혹독한 겨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동시에 그 겨울을 뚫고 피어난 새로운 시대의 기술적 풍요를 누리며 성장했습니다. IMF 시대가 남긴 꿈과 현실의 간극, 그 복잡한 유산 위에서 우리의 진짜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야기는 다음 소제목에서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
98년생이 기억하는 그 시절

1998년, IMF 외환위기의 한파가 대한민국을 휩쓸던 바로 그 해에 우리는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어쩌면 조금은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시대의 시작점에서 태어났기에, 우리는 그 누구보다 역동적인 변화의 물결을 온몸으로 맞이하며 성장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아련한 감성과 디지털 시대의 폭발적인 혁신, 그 경계선 위에서 보낸 우리의 유년 시절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기억됩니다. 98년생은 어쩌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극적인 기술적, 문화적 변화의 중심을 온몸으로 겪어낸 세대일지도 모릅니다. 스마트폰이 없어도 하루가 즐거웠고, 느린 인터넷 속에서도 우리만의 세상을 구축했으며, 작은 MP3 플레이어 하나에 온 세상을 담았던 그 시절. 지금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98년생의 기억 저장소로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기억의 조각들: 98년생 공감 모음
우리의 기억은 파편처럼 흩어져 있지만, 특정 ‘키워드’ 하나에 신기할 정도로 생생하게 되살아나곤 합니다. 아래 표는 98년생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대표하는 아이템과 문화 코드들입니다.
| 구분 | 핵심 키워드 | 우리의 기억 |
|---|---|---|
| IT / 디지털 | 싸이월드, 버디버디, 폴더폰 | “일촌 파도타기”로 밤을 새우고, 도토리를 모아 미니홈피 BGM을 바꾸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습니다. 로그인 알림음이 매력적이었던 버디버디 메신저의 ‘자리 비움’, ‘다른 용무 중’ 같은 상태 메시지로 친구들과 미묘한 심리전을 벌이기도 했죠. 천지인 자판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보내던 문자 메시지와 폴더를 ‘착’ 하고 닫을 때의 손맛은 지금의 터치스크린이 줄 수 없는 아날로그적 쾌감이었습니다. |
| 문화 / 엔터테인먼트 | 2세대 아이돌, 무한도전, MP3 | 동방신기, 빅뱅, 슈퍼주니어, 원더걸스, 소녀시대로 대표되는 2세대 아이돌의 황금기는 우리의 학창 시절 그 자체였습니다. 노래 가사를 공책에 빼곡히 적고, 안무를 따라 추며 쉬는 시간을 보냈죠. 토요일 저녁이면 온 가족이 TV 앞에 모여 <무한도전> 레전드 편을 보며 배꼽을 잡았고, 목에 건 아이리버 MP3 플레이어에 ‘소리바다’에서 받은 최신곡을 채워 넣는 것은 등하굣길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
| 학교 / 일상 | 노스페이스 패딩, 떡꼬치, 문화상품권 | ‘등골 브레이커’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노스페이스 패딩은 교복 위의 교복이었습니다. 색깔과 모델별로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기도 했죠. 하굣길에 친구들과 문방구 앞에서 사 먹던 300원짜리 떡꼬치와 피카츄 돈까스의 맛은 여전히 잊을 수 없습니다. 생일이나 명절에 받은 문화상품권은 온라인 게임 캐시를 충전하거나 서점에서 만화책을 사는 데 사용되는, 우리 세대의 가장 강력한 화폐였습니다. |
이처럼 표에 나열된 것들은 단순한 물건이나 유행이 아니었습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세상에 나를 보여주는 첫 번째 창구였고, MP3 플레이어는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기억의 파편들은 2000년대 후반과 2010년대 초반을 살아간 우리들의 정체성이자, 세상을 배우고 꿈을 키워나가던 성장의 기록입니다. 친구들과의 우정, 풋풋했던 첫사랑,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설렘 모두가 그 안에 녹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촌스럽고 불편한 것들 투성이입니다. 사진 한 장을 올리는 데 한참이 걸렸고, 듣고 싶은 노래가 생기면 컴퓨터를 켜고 직접 파일을 옮겨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기다림과 번거로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더 설레고, 더 소중하게 순간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고 편리해진 지금, 가끔은 조금 느리고 투박했던 그 시절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그때의 우리는 서툴렀지만, 그 누구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각자의 세상을 채워나가고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는 어떻게 변했나?

IMF 외환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998년, 우리는 세상에 나왔습니다. 밀레니엄의 희망과 세기말의 불안감이 공존하던 시대, 2002년 월드컵의 함성을 들으며 자랐고,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우리의 일상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온라인 관계’를 배웠습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격변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우리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다이내믹한 순간들을 관통해 온 세대입니다.
어릴 적 막연히 꿈꾸던 20대 후반의 모습은 어쩌면 안정적인 직장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는, 비교적 평범하고 정형화된 모습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심한 취업난, 그리고 전 세계를 멈춰 세운 코로나19 팬데믹까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예측 불가능한 파도의 연속이었고, 그 파도를 넘으며 우리는 과거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치열한 현실 속, 우리들의 자화상
그 시절의 꿈과 지금의 현실 사이에서, 98년생, 즉 현재의 20대 후반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최신 통계와 사회적 트렌드를 바탕으로 우리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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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끌’과 ‘빚투’를 넘어선 현실적 재테크
부동산 가격 폭등기에 ‘영혼까지 끌어모아’ 내 집을 마련하려던 ‘영끌’ 트렌드는 이제 높은 금리의 벽에 부딪혔습니다. 2023년 하반기부터 이어진 고금리 기조는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변동성을 키웠고, 98년생을 포함한 2030 세대의 자산 형성 전략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더 이상 ‘한 방’을 노리는 투기성 투자보다는,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N잡’과 소액으로 시작할 수 있는 국내외 주식, 혹은 파킹통장과 예적금을 활용한 안정 지향적 자산 관리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는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생존하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우리 세대의 절박함과 영리함이 동시에 반영된 결과입니다. -
‘평생직장’이 아닌 ‘성장하는 직업’을 향한 여정
우리에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희미해진 지 오래입니다. 통계청의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첫 직장을 그만둔 청년(15~29세)의 평균 근속 기간은 1년 6.6개월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더 이상 하나의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본인의 성장 가능성,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합당한 보상을 찾아 적극적으로 이직하는 ‘잡호핑(Job-hopping)’ 문화가 보편화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재택 및 유연 근무를 경험한 세대로서, 경직된 조직 문화보다는 수평적이고 자율적인 환경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
‘나’의 행복이 최우선, 달라진 관계의 정의
결혼과 출산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기던 과거와 달리, 98년생에게 이는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통계청의 ‘2023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청년(19~34세)의 비율은 34.9%에 그쳤습니다. 이는 높은 주거 비용, 사교육비 부담 등 경제적 요인과 함께, 결혼이나 육아로 인해 자신의 삶과 커리어를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가치관의 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대신 우리는 연애, 결혼, 출산이라는 전통적 틀에서 벗어나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펫팸족’, 취향 공동체, 혹은 자기 계발에 집중하며 ‘나 자신’의 행복과 만족을 찾는 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98년생의 현재는 과거 우리가 꿈꾸던 모습과는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실패나 포기가 아닌,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 나서는 능동적인 변화의 과정입니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기보다, 수많은 갈림길 앞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때로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 98년생의 진짜 모습일 것입니다.